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터미널』은 2004년 개봉 당시에도 따뜻한 인간애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지금, 그 의미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공항이라는 공간에 '고립'된 한 남자의 이야기였던 이 영화는, 이제 물리적·정서적 ‘격리’와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새롭게 읽힙니다. 본 리뷰에서는 ‘터미널’을 팬데믹 이후의 시선으로 재조명하며, 이 영화가 던지는 외로움, 생존,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공항에서의 격리, 낯설지 않은 현실 (격리)
영화 ‘터미널’은 주인공 빅터 나보르스키가 갑작스러운 모국의 내전으로 인해 공항에 입국도 출국도 하지 못한 채 ‘터미널’ 안에 갇히는 상황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설정은 불과 몇 년 전 팬데믹 시기에 전 세계인이 겪은 격리 상황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국경이 폐쇄되거나, 자가격리 조치를 받으며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공항은 더 이상 연결의 장소가 아니라 단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빅터가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 땅에서,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정체성과 자유를 잃은 채 살아가는 모습은, 코로나19 시기 각국의 공항에서 발이 묶인 이민자, 출장자, 난민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공항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벌어지는 ‘고립된 삶’은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사회적 고립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빅터의 하루하루는 마치 자가격리 14일을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처럼, 고립 속에서 나름의 질서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그려집니다.
외로움과 단절 속에서 피어난 연대 (외로움)
‘터미널’의 가장 큰 미덕은, 이 특별한 상황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가능성과 따뜻함입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며 우리는 외로움이 일상이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빅터는 처음에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철저히 고립된 외국인이지만, 청소부, 경비, 카페 직원, 심지어는 단속 책임자인 공항 관리자와도 조심스럽게 관계를 형성해 나갑니다. 그의 순수하고 진심 어린 태도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결국 그들 스스로도 자신이 잊고 있던 인간다움과 연대의 의미를 되찾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얼굴도 가리지 못한 채 소통하던 마스크 속의 사람들, 멀어지는 인간관계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빅터의 행동은 그런 ‘조용한 연대’의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국적이 달라도, 마음을 나누는 행위 자체가 인간다움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따뜻하게 전달합니다. 영화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우정과 사랑, 이해의 순간들은 팬데믹 시대 이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 사이의 관계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의 회복, 그 자체가 메시지다 (인간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터미널’을 단순한 코미디나 휴먼 드라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빅터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빅터는 규칙을 지키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비인격적인 공항 시스템 안에서도 인간다운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를 돌보며, 타인을 도우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코로나19 시기,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응원과 박수를 나누었던 우리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빅터가 아버지의 유해를 위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살아남기’에 그치지 않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가치를 지키려는 인간의 의지, 그것이 ‘터미널’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는 공항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무너진 공동체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인간성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과 ‘효율’이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이 영화는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따뜻한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터미널’은 팬데믹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팬데믹 이후 더욱 의미 있는 영화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격리와 외로움, 단절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에게, 이 영화는 공항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도 인간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임을 ‘터미널’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