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원찬 감독의 데뷔작 『오피스(2015)』는 직장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스릴러이자 사회극입니다. 고아성과 박성웅, 배성우 등 탄탄한 연기진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단순한 살인사건을 다룬 공포물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직장 문화를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피스’가 보여주는 직장 내 공포의 실체, 그 분위기와 구조가 담고 있는 현실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평범한 사무실이 가장 무서운 공간이 될 때 (살인)
‘오피스’는 시작부터 충격적입니다. 한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가족을 몰살하고 실종되는 사건으로 문을 엽니다. 이후 그는 회사 내부로 복귀했지만, 그가 나갔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는 곧 사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함께 공포로 확산되며, 영화의 주요 플롯이 전개됩니다. 살인은 이 영화에서 단지 자극적인 장치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인을 계기로 드러나는 것은 조직 내의 냉담한 구조와 단절된 인간관계입니다. 누구도 서로를 믿지 않으며, 누가 죽든 ‘내가 아니면 된다’는 생존 본능이 앞서는 현실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직장 내 경쟁과 고립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의외로 낯설지 않은 감정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살인자에 대한 추적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피해자인 이 구조 속에서, 살인 그 자체보다 더 섬뜩한 것은 무기력한 회사 구성원들의 반응과 분위기입니다. 사람을 죽인 이가 사무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가는 '회사 시스템의 냉정함'이 더 무섭게 다가옵니다.
불 꺼진 사무실의 정적, 서늘한 긴장감 (분위기)
영화 ‘오피스’의 또 다른 강점은 공간의 활용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회사 건물 내부, 특히 사무실, 복도, 엘리베이터, 계단과 같은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집니다. 이러한 제한된 공간은 감정을 억압하고 긴장을 누적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며, 흔히 ‘사무 공간’이 주는 일상의 안정감은 서서히 불쾌한 긴장감으로 전환됩니다. 밤늦은 야근, 아무도 없는 복도에 울리는 힐 소리, 커피 타는 소리, 느리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등 일상적 사운드들은 영화 내내 공포의 배경음으로 재해석됩니다. 관객은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점점 숨 막히는 폐쇄감과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되고, 이는 장르적 쾌감과 함께 공감 가능한 사회적 불안을 자극합니다. 특히 인물 간 대화에서도 정적이 길게 흐르거나, 눈치 보기식 말투와 애매한 표정이 긴장감을 강화시킵니다. 이처럼 영화는 시끄럽지 않지만, 조용히 조여 오는 불안감을 통해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변모시킵니다.
현실을 담은 직장 스릴러, 불편한 공감 (현실성)
‘오피스’가 무서운 진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김이름(고아성)은 계약직으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정규직들은 형식적인 관심이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누군가의 사라짐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침묵합니다. 이 구조는 오늘날 직장 문화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계약직의 불안정성, 상명하복의 위계 문화, 집단 내 소외와 방관, 형식적인 동료애 등은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인물에게 그럴듯한 동기와 상처를 부여하며, 결국 이 사건을 만든 건 특정 개인이 아닌 사회 시스템 전체임을 암시합니다. 살인은 극단적이지만, 그로 향하는 정서적 경로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것입니다. ‘오피스’는 괴담이나 귀신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지금도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피스’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 직장의 공기 속에 스며든 무언가 불편하고 기묘한 감정을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질적인 공포는, 현실을 닮았기에 더욱 서늘합니다. ‘오피스’는 직장이라는 일상의 공간이 어떻게 심리적 감옥이자, 생존 경쟁의 전쟁터로 바뀌는지를 강하게 보여주며,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직장은 정말 안전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