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국내 극장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개인의 선택이 사회 구조에 의해 얼마나 쉽게 꺾이고, 삶의 방향이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현실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인생의 회한, 직장과 가정의 균열, 그리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긴 이 작품은 2025년 ‘인생영화’로 회자되는 중이다.
이선균의 눈빛에 담긴 현실: 감정선의 끝에서 마주한 무력감
‘어쩔 수가 없다’에서 주인공 ‘재민’을 연기한 이선균은 내면의 감정을 눈빛 하나로 표현해 낸다. 영화는 재민이 다니던 중견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조직 내 갈등과 무기력함 속에서 버텨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도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현실적인 대사, 직장 내 정치, 동료의 배신 등은 그 어떤 판타지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재민이 상사에게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구는 순간이다. 여기서 이선균의 표정은 분노와 체념, 슬픔이 모두 섞여 있다. 관객은 그 짧은 눈빛 하나로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장면은 현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감정 노동’과 비슷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책임을 지고, 말할 수도 없이 억눌려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영화는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처럼 ‘어쩔 수가 없다’는 감정의 흐름을 과장 없이 따라가면서도, 관객의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힘을 지녔다. 이선균의 연기력은 그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단순한 ‘직장인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영화가 던지는 질문
이 영화가 단지 한 남성의 인생 역정을 다룬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극 속에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한 구조적 문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대사이기도 하다. 이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시스템의 벽을 의미한다.
가령, 재민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리 대상’이 되었기에 회사를 떠나야 했고, 가족과의 갈등도 그가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 아니면,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또한 영화는 중년 남성의 삶에 집중하면서, 그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소외되고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기존 영화들이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전면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짊어진 인물이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쉽게 밀려나는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쩔 수가 없다’는 슬로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영화는 그 말의 위험성과 슬픔을 함께 보여준다. 그저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든다.
무너지는 인간관계 속 남겨진 감정선
영화는 직장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주인공의 가정과 인간관계 또한 영화의 주요 테마다. 재민은 해고 이후 가족에게조차 점점 멀어지고, 가장이자 남편으로서의 역할이 붕괴되는 과정을 겪는다. 아내는 그에게 "당신도 설명 좀 해줘"라고 하지만, 그는 할 말이 없다. 이 장면은 단순한 부부싸움이 아니라, 소통 불능 상태에 놓인 중년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러한 감정선은 직장과 가족의 문제를 각각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얽혀 있는 복합적인 삶의 구조를 드러낸다. 한쪽에서 균열이 시작되면, 다른 영역도 무너지는 현실. 영화는 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고립되고,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친구와의 관계, 자식과의 거리감 등도 함께 그려지며 영화의 감정선은 더욱 짙어진다.
재민이 홀로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지만, 무엇도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한다. 이 감정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공허함이며, 그렇기에 영화가 남긴 여운은 깊고 오래간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단지 상황의 요약이 아니라, 감정의 이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한 휴먼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거울이며, 더 나아가 사회 구조와 개인감정 사이의 간극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이선균의 연기, 디테일한 연출, 치밀한 대사 구성은 모두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고, 끝내 눈물을 머금게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나는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를 스스로 묻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말이 더 이상 일상이 되지 않기를, 그런 변화를 기대해 본다.